<월간 서예문인화> 2026년 8월호 표지작가 : 취석·푸른돌 송하진
월간 서예문인화 2026년 8월호 표지행정과 서예를 관통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과 예술적 연원
취석(翠石)·푸른돌 송하진 선생은 40여 년간 행정과 정치의 중심에서 헌신해 온 공직자이자, 평생을 서예와 함께 호흡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서예가이다. 전주시장과 전라북도지사를 역임하며 전주 한옥마을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키고,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및 국제슬로시티 지정, 그리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창설과 발전을 끌어낸 행정적 성과는 단순한 정책 집행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전통문화의 깊은 이해와 예술적 기질이 행정이라는 실천적 영역과 결합하여 빚어낸 문화적 성취라 할 수 있다. 현재 (사)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으로서 한국 서예의 진흥을 위해 선두에서 ‘K-서예’를 이끌고 있는 선생의 행보는 행정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상호 작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을 방증한다.
취석 송하진 선생 서예술의 뿌리는 가학(家學)과 예술적 성장 배경에 연원한다. 조부 유재 송기면(裕齋 宋基冕) 선생은 “우리의 전통을 몸체로 삼되 그 쓰임새는 새로워야 한다.”는 ‘구체신용(具體新用)’을 주창한 대유학자였으며, 부친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선생은 일제의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평생 한복과 갓을 고수하며 올곧은 선비 정신을 필묵으로 구현한 근현대 한국 서예의 거장이다. 이러한 가문에서 성장한 취석 선생은 유년시절부터 한학과 서예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목유이염(目濡耳染: 눈에 젖고 귀에 물듦)’의 과정을 거쳤다.
취석 선생의 예술세계는 단순한 기법의 습득을 넘어, 동양의 고전적 가치와 인문학적 소양을 체화한 탄탄한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다. 50대 후반까지 구양순, 안진경, 왕탁 등 중국 명필들의 비첩을 탐구하며 전통 서예의 법도(法度)를 깊이 연마하였으며, 60대에 이르러 서예의 대중성과 한국성, 나아가 서예의 세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했다. 추사 김정희, 창암 이삼만 등 한국 서예가들의 독창성에 주목하며 한국 서예가 나아갈 미래지향적 방향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고전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벗어나, 서구화와 영상 미디어의 확산, 가속화되는 디지털화의 현대 사회에서 서예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예술적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주체적 결단이었다.
송하진 作, 돌
한국 서예의 주체성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가로쓰기 선언은 ‘K-서예’의 정체성 확립이다
취석 송하진 선생 서예 철학의 핵심은 한국 서예의 주체성 확립과 이를 기반으로 한 K-서예의 세계화에 있다. 선생은 오랜 역사 동안 한국 서예의 주류를 형성해 온 한자 및 한문 서예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현대 한국 서예의 진정한 주인은 마땅히 ‘한글’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문자가 내포한 국적성과 그 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한글은 창제 원리의 과학성, 실용성, 그리고 미적 조형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는 문자이다. 취석 선생은 언어 문자가 민족의 의식과 혼을 지배하며, 예술은 그 시대의 역사적, 공간적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예술 사회학적 관점을 견지한다. 중국 서예가 한자를, 일본 서예가 가나(일본어)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했듯, 한국 서예 역시 우리의 모국어인 한글을 중심 소재로 삼을 때 비로소 확고한 정체성(Identity)을 지닌 ‘K-서예’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와 대중이 한자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과 난해함은 서예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취석 선생은 한글 중심의 서예를 통해 서예를 전문가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이 쉽게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예술로 전환하고자 한다. 한글 서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가장 앞장선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한글서예의 형식적 혁신으로서 ‘가로쓰기’의 당위성도 강력히 주장해오고 있다. 전통 서예는 문장의 어순과 무관하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쓰는 세로쓰기를 관행으로 삼아왔으나, 현대 한글의 어순과 일상적인 읽기 방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가로쓰기이다. 서예가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인 이상, 시대의 보편적 읽기 방식을 수용하여 가로쓰기로 전환하는 것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가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다. 이는 전통의 맹목적 답습을 거부하고 시대정신과 조응하려는 개혁적 서예관을 잘 보여준다.
송하진 作, 아리랑
‘거침없이 쓰는 서예’와 실험적 조형성으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미학을 선보이다
취석 송하진 선생은 전통 서예의 엄격한 법칙과 인습적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감각과 필력을 발산하는 ‘거침없이 쓰는 서예’를 주창한다. 선생에게 있어 고전(古典)은 고정불변의 진리를 담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발광체’이다. “화석화된 과거의 결과물이나 불타버린 재를 너무 소중히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선생의 성찰은, 옛 비첩의 형식적 모방에 치중하는 사자관(寫字官)적 태도를 경계하고, 내면의 기운과 율동을 붓끝에 담아내는 창신(創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송하진 作, 오손도손
송하진 作, 지금 여기
이러한 철학은 시각예술로서 한글이 지닌 미적 조형성을 극대화하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창작 방법론으로 전개된다.
첫째, 선과 획의 역동적 운용이다. 선생의 필획은 점획의 크고 작음, 진하고 옅음, 빠르고 느림, 굳세고 부드러움을 다채롭게 교차시키며 한글 자형에 강력한 리듬감과 조형적 변화를 부여한다. 둘째, 묵색(墨色)의 스펙트럼 확장이다. 단순히 검은색이라고 고정시키지 않고, 진하고 옅은, 밝고 투명한 먹이 지닌 오묘한 색조를 정교하게 통제함으로써 작품에 입체감과 회화성을 부여한다. 셋째, 타 장르와의 적극적인 융복합이다. 흑·백·주(黑·白·朱)라는 서예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캘리그라피의 자유로운 경향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도예(陶藝) 등과 결합하여 서예의 물성적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작품 <돌>, <지금 여기>, <오손도손>, <해달별꿈>, <ㄱㄴㄷㄹ> 등은 이러한 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술평론가 장준석은 작품 <돌>을 두고 “글자 속에 그림이 있고 시가 내재된 시서화(詩書畵)의 결정체”라고 극찬하였다. 초성 ‘ㄷ’은 좌우 운필을 역행한 우에서 좌로 긋는 필법을 구사하여 오랜 풍파를 견딘 바위의 균열을 묘사하고, 종성 ‘ㄹ’은 묵직하고 강렬한 농담과 굵은 획을 배치하여 지면에 뿌리박힌 돌의 육중한 중량감과 안정감을 시각화하였다. 삼각형 구도 속에 배치된 이 단일 글자는 단순한 기호의 전달을 넘어, 작가의 내면적 굳건함과 자연의 생명력을 투사한 하나의 완전한 시각적 상징물로 기능하였다는 것이다.
송하진 作, 한글 자모음
서예의 본질적 가독성과 한국 서예가 나아갈 미래
형식적 파격과 조형적 실험을 전개하면서도, 취석 송하진 선생이 결코 양보하지 않는 서예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가독성(可讀性)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근본정신에 위배될 정도로 자형을 심하게 왜곡하거나 지나친 추상화로 흘러가 문자를 판독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경계한다. 서예가 추상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것은 물론 가독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문자를 매개로 한 예술적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평론가 김병기 교수는 취석 선생의 서예를 두고 “정직이자 질박이며, 꾸밈이 없는 순수한 신음(呻吟)”이라 평하였다. 정치인이나 학자인 척하는 가식(假飾) 없이, 밝은 눈으로 현실을 응시하고 맑은 마음으로 예술을 대하는 취석 선생의 진솔한 태도가 필묵을 통해 그대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석 선생의 예술 세계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바쁜 시간 속에서 시를 쓰고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문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교감, 타고난 창작열이 꺼지지 않게 단련한 데서 비롯되었다. 선생은 가학을 바탕으로 한학과 국문학, 예술, 역사 등 인문학적 기본소양을 갖추어 문단활동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정치, 행정, 경제 등 사회과학을 전공한 정책학박사로서 현실 정치행정에도 직접 참여하여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은 사유로 진정한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서예가란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하기에 형식의 다름, 표현방식의 차이, 시간의 흐름, 공간의 변화 등을 거리낌 없이 흡수하고 응시하며 융합하여 자신의 예술적 토대로 쌓았다. 나아가 조형적 형태미의 예술성과 본질적 정보 전달의 가독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선생이 추구하는 현대 한국 서예의 핵심 과제임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송하진 作, 해달별꿈 바로 지금 여기에서
취석 선생의 ‘거침없이 쓰는 서예’는 흔들리고 위축된 현대 서예계에 던지는 강력한 쇄신의 메시지이다. 동시에 서예가 고정화되고 박제된 골동품이 아닌 동시대인과 교감하는 살아 숨 쉬는 대중 예술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 대안이다. 전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인문학적 깊이와 현대적 조형 감각의 결합, 맹목적 한문 지향에서 탈피한 확고한 한글 서예의 주체성, 그리고 시대정신과 조응하는 대중적 소통의 모색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강한 실천 정신과 깊고 숭고한 예술 철학이 한국 서예를 진정 사랑하고 한국 서예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 가장 앞장서 노력하는 현재를 이끌어낸 것이라 하겠다.
취석 송하진 선생이 화두를 던지고 실천적으로 걸어가는 ‘묵적(墨跡)’은, 한국 서예가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해 나갈 수 있는 이상적이고 구체적인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되고 있다. 선생의 붓끝에서 펼쳐지는 독창적 예술 세계는 21세기 K-서예를 견인할 중요한 초석으로 기록될 것이다.

송하진 (宋河珍, 아호: 翠石, 푸른돌)
• 1952년 4월 29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여뀌다리 출생. 1965년 이후 전주와 서울 생활. 1980년 제24회 행정고등고시를 통하여 내무부, 전라북도, 전주시, 행정안전부 등 공직의 길을 걸음. 일제에 항거하여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평생을 갓과 한복으로 일관하며 근현대 한국 서예대가로 알려진 선친 강암송성용 선생으로부터 문학과 서예술을 익혔으며, 시에서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서예에서는 한글이 주인되는 서예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가로쓰기, 그리고 거침없이 쓰는 서예를 주창하며 작품활동.
• 김제종정초, 익산남성중, 전주고, 성균관대행정학과1년, 고려대법학과 졸업
• 서울대 행정대학원(한국예술행정에 관한 연구로 행정학석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책 실패의 제도화에 관한 연구로 정책학박사)
• 김구용 선생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시를, 성당 박인규 선생께 논어 공부
• 1972년 성균관대학교 성균문학상 가작 수상
• 1972년 소지 강창원 선생 지도 성균서도회 활동
• 2006년 7월~2014년 6월 민선 전주시장
• 2014년 7월~2022년 6월 민선 전라북도지사
• 2006년 시집 『모악에 머물다』, 학술서 『정책성공과 실패의 대위법』 공저
• 2010년 시집 『느티나무는 힘이 세다』
• 2010년 한국정책학회 학술상 수상 (고려대 김영평 교수와 공동 수상)
• 2011년~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명사서예전 연12회 출품
• 2013년 『화이부동 세상』 출간
• 2013년 한국문학예술상 시부문 본상 수상 (포스트모던)
• 2021년~현재 강암연묵회 활동 (김대중 대통령옥중편지 서예전 등 연6회 출품)
• 2023년~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한글서예유네스코무형유산 등재 추진 위원장, 서울시인협회 고문, 전북 전주 문인협회와 시인협회 활동
• 1924년 『거침없이 쓴다-푸른돌 취석 송하진 서집』 발간 (이화문화출판사)
• 2024년 9월~11월 서울 한국미술관, 전주현대미술관 초대 서예개인전
• 2024년 12월 김대중탄생100주년 기념 후광김대중어록 서예전 (국회도서관)
• 2025년 6월 한글이 숨쉬다-폰트아트모색 서화8인전(전주 현대미술관)
• 2025년 시집 『모란 속을 걷다』 출간
• 2025.10.22~11.2 세종특별자치시 초대 <한글의 멋을 담은 K-서예전>
• 2025.12.12~12.19 한국·아르헨티나 이민60주년기념 한글서예특별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장식예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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