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양상철의 서예담론 · 1 > 서예의 미래, 누가 주도할 것인가
  • 관리자 관리자
  • 등록 2026-08-26 18:16:46
  • 수정 2026-09-03 16:06:43
기사수정
  • 시간성의 확장: 서예 고유의 시간 미학을 지키는 길
  • 한천 양상철 (융합서예술가)

서예는 단순한 문자의 기록을 넘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시간성이라는 심오한 미학적 본질을 축적해 온 예술이다. 붓과 먹이 종이 위에서 펼쳐내는 순간의 궤적은 작가의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되고, 그 시공간적 흔적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서예의 미적 확장은 그 주체와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사에서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가 서예적 요소를 차용하여 세계적인 미술사조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서예의 보편적 미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동시에 동서 미학의 충돌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며 서예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서예의 미래는 외부의 차용과 수동적인 영향력에 기대야 할까, 아니면 서예가 스스로 내재된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필자는 전문 서예작가들의 주체적인 ‘창신(創新)’과 대담한 변혁에서 찾고자 한다. 서예의 깊은 시간미학을 관통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전문 서예가의 역할에 주목하고, 서예의 현대미학적 접근 안에서 미래 서예의 지향점을 심도 있게 논할 것이다. 우선 전통서예의 ‘결과로서의 시간성’을 넘어, 현대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성’을 포용하고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시간의 의미를 창출하며 서예의 시간적 인식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종이에 먹, 가로 138cm, 세로 32cm, 국립중앙박물관, 2018년 손창근 기증


정제된 축적에서 인식의 확장으로: 서예 고유의 시간 미학을 지키는 길

전통 서예에서 시간성은 서예가의 삶 자체가 투영된 내재적이고 숙련된 시간의 미학을 의미한다. 붓을 잡고 먹을 가는 수십 년의 과정은 단순히 기술 습득을 넘어선 정신 수양의 시간이었다. 매일 새벽 고요한 서실에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드는 반복적인 행위는 서예가의 육신을 단련할 뿐 아니라, 명상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정신적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다. 획 하나하나에 스며든 필력의 강약, 먹의 농담 변화, 그리고 글자 간의 유기적인 호흡은 이처럼 고된 시간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예는 그가 쌓아 올린 학문과 인품, 그리고 평생의 고뇌가 붓끝에 응축된 시간의 결정체이다. 그의 글씨에서 느껴지는 고고한 기개와 절제된 미감은 단순한 조형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와 정신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통 서예가에게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도구이자, 작품 속에 담겨 불멸성을 부여하는 본질적인 요소다. 이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작품 속에 집약되어 ‘불변의 가치’를 획득하는 ‘결과로서의 예술’의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은 또한 서예의 ‘일회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시간적 제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붓을 한 번 들면 되돌릴 수 없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원칙은 서예가에게 한순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극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수십 년간 축적된 시간과 정신적 깊이가 바로 이 찰나의 순간, 붓끝으로 압축되고 응축되어 작품에 영원히 새겨지는 것이다. 이는 서예가 단 한 번의 시도로 무한한 시간을 담아내는 역설적인 미학을 구현하는 지점이며, 작품 속에 불멸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시간 개념은 현대 미술과의 조우 속에서 새로운 해석의 도전에 직면한다. 20세기 중반, 잭슨 폴록의 드리핑이나 프란츠 클라인의 거친 흑백 추상화 등 서양의 앵포르멜 및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동양 서예의 순간적인 붓질과 역동적인 에너지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붓이 종이에 닿는 찰나의 시간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우연적인 효과를 강조하며 ‘분출하는 시간’의 미학, 즉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구현했다. 이는 분명 회화의 영역을 확장한 중요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에서 서예가 가진 수행적 시간의 축적이나 정신적 깊이까지 온전히 계승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붓질의 속도와 강렬함에 집중했을 뿐, 붓과 먹이 가지는 동양적 철학과 수련의 의미까지 내포하지는 못했다. 이는 서예가 외부 장르에 수동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례이지, 서예 스스로 시간성의 지평을 확장한 능동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서예의 본질적 가치 중 일부만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며, 이는 동양의 내재적 ‘결과로서의 시간성’과 서양의 즉흥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성’ 간의 명확한 충돌 지점을 보여준다.


Jackson Pollock, Convergence, 1952


미래 서예는 이러한 수동성을 넘어, 서예가 스스로 시간의 인식을 확장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전통의 깊이를 이해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하게 휘둘러지는 붓의 움직임과 찰나의 에너지 발현을 작품의 핵심 요소로 끌어안아야 한다. 이는 서예의 본질인 시간적 흔적을 더욱 역동적이고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방법이며, 서예의 내재된 시간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미래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키는 길이다. 전문 서예가는 이러한 즉흥적이고 빠른 붓질 속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체득된 필법과 먹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의도적 우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전통의 깊이가 현대적 실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결과로서의 예술’에 ‘과정으로서의 예술’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이다.


Franz Kline, Mahoning, 1956


나아가 디지털 미디어, 인터랙티브 아트 등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여 서예의 시간성을 다각적으로 표현하고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붓의 움직임과 필획이 실시간으로 디지털 화면에 구현되고 기록되는 것은 서예의 본질인 ‘일필휘지’의 순간성을 영속적인 ‘과정’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이는 찰나의 흔적이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무한히 반복되고 변형될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나아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의 시간적 흐름이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는 서예의 ‘일회성’을 능동적인 ‘공유된 시간성’으로 전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객의 움직임이나 음성이 붓의 궤적이나 먹의 번짐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전통 서예가가 홀로 수련을 통해 축적한 내면의 시간을 관객과 함께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경험으로서의 시간’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서예가 가진 ‘정제된 축적의 시간성’을 디지털의 ‘기록 및 변형의 시간성’과 결합하여, 과거의 깊이가 현재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고암 이응노, 군상, 1986


서예의 미적 확장: 정통성에 뿌리내린 창신(創新)의 당위성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의 성공은 서예의 조형적 잠재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보편적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서예 본연의 특성이 다른 장르에서 차용되어도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은, 서예 자체가 지닌 미학적 깊이가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서예의 본질적 가치를 외부에서 차용하는 것을 넘어, 서예 스스로가 그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면서도 미래를 개척할 수는 없을까? 이는 서예의 ‘외부적 차용’과 ‘내재적 변혁’ 사이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서예의 능동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 서예가들에 의한 미적 확장의 당위성이 부각된다. 그들은 서예의 정통성을 유지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로이다. 이들은 서예의 시간성, 즉 오랜 수련을 통해 체득된 필묵의 정신과 기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한다. 전통적인 서예의 형식과 내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현대적인 감각과 주제 의식을 접목하여 서예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암 이응노 화백은 서예적 필선을 기반으로 추상화를 시도하며 동양의 정신성을 현대 회화에 접목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의 ‘군상(群像)’ 연작은 서예적 ‘점획’을 통해 인간 군중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표현하며, 서예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확장한 성공적인 경우였다.


양상철, 3일 간의 프로젝트 - 노자와 삼방굴사, 180×500cm, 천 위에 먹과 아크릴, 2021

이러한 ‘내재적 발전’의 흐름, 즉 ‘결과’와 ‘과정’이 융합된 창신은 필자의 서귀포 ‘3일간의 프로젝트’와 같은 융합 서예술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노자의 ‘도(道)’ 사상을 서예의 시간성 속에 녹여내어, 서귀포의 야외 공간에서 제주 바람처럼 급박하게 대형 작품 6점을 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작업하여 전시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조형적 차용을 넘어, 서예의 철학적 깊이를 현장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제공하며 서예의 외연을 넓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서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내재적 발전’의 길이다. 이러한 창신은 전통 서예의 엄격한 형식과 재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서예 본연의 정신성과 필묵의 깊이를 유지하며 새로운 시각적, 개념적 지평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서예를 전공하지 않은 화가들의 서예 차용은 서예 장르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서예술의 정통성에서 벗어날 위험도 내포한다. 이들의 작업은 서예를 문자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 순수 조형 예술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서예가 지닌 조형적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대중에게 서예를 더 친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예의 깊은 역사적, 미학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시각적 효과만을 차용한다면, 이는 서예의 본질적 가치를 희석시키고 ‘서예 흉내 내기’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필자가 생각하는 ‘서예적인 것’의 최소한의 경계는 바로 ‘필묵의 정신’과 ‘서예적 조형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을 둔다. 이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을 넘어, 붓끝에 담긴 작가의 정신적 수양, 먹의 농담과 번짐이 만들어내는 공간감, 그리고 획과 획 사이의 호흡에서 오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가 서예적 요소를 흡수하여 새로운 사조를 만들었듯이, 서예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미술의 언어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예의 정통성을 간과한 확장은 자칫 ‘결과’만을 좇거나 ‘과정’의 깊이를 놓친 ‘서예적인 것’의 유행이나 현상에 그칠 수 있다. ‘서예 그 자체로서의 현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본질적 정신성을 바탕으로 한 실험이 필수적이다.


3일 간의 프로젝트 바람 부는 날의 야외 작업 장면


결론: 서예가들의 또 다른 근본적 창신(創新)으로 미래 서예를 예측하다

궁극적으로 서예의 미래는 정통성에 뿌리내린 끊임없는 실험에 달려 있다. 전문 서예가들이 전통의 깊이를 바탕으로 시간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확장해 나갈 때, 서예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를 호흡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있는 예술로서 그 독창적인 미학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그들의 붓질은 단순한 필획이 아니라, 수천 년 서예의 역사를 이어받은 생명력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필획’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의식적으로 단련된 서예가의 인격과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완성된 ‘결과’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과정’의 미학을 보여준다.

세계 미술사조가 서예의 조형적 가치를 인정하고 차용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서예가 가진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제는 서예가 스스로 그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서예로부터 영감을 받은 미술’을 넘어, ‘서예 그 자체로서의 현대 예술’을 만들어낼 때이다. 서예 안에서부터의 주체적인 확산력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서예의 진정한 미래를 예측하고 주도할 수 있다. 서예 밖에서 확산된 움직임은 수동적이며, 서예의 본질적 발전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전문 서예가들에게는 전통의 계승을 넘어선 ‘또 다른 근본적인 창신(創新)’이 요구된다. 여기서 ‘또 다른 근본적인 창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형태나 재료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 서예 본연의 시간 미학, 정신성, 그리고 필묵의 원리를 현대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서예의 존재론적 의미와 예술적 지평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창신은 서예를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동서양의 미학적 경계를 허물고 인류 보편의 예술적 질문에 답하며 미래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선도적인 예술’로 격상시킬 것이다. 전문 서예가들의 통찰력과 용기 있는 실험만이 서예를 한국을 넘어 세계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며, 인류의 보편적인 미의식에 기여하는 예술로 우뚝 서게 할 것이다. 붓끝에 과거의 지혜를 담고, 현재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서예는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닌다. 서예는 그렇게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가올 시대의 예술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르로 거듭날 것이다. 이는 서예가들이 주체적으로 서예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능동적인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며, 서예가 세계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용어 해설>

결과로서의 예술 (Art as Product) : 예술 작품의 완성된 형태, 즉 최종 결과물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예술 개념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작품의 완성도, 미적 형식, 내용의 정제성 등이 중요하게 평가된다. 서예에서는 수십 년간의 수련을 통해 얻어진 완벽한 필획, 먹의 농담, 글자 배치의 조화 등이 응축되어 불변의 가치를 지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서예가의 오랜 노력과 정신이 집약된 서예 작품 그 자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과정으로서의 예술 (Art as Process) :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창작 행위 자체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예술 개념이다. 작품의 최종 형태보다는 작가의 행위, 아이디어의 발현, 즉흥성, 실험성 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서양의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에서 작가의 즉흥적인 붓질이나 신체적 움직임이 작품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서예에서는 붓을 휘두르는 순간의 에너지, 먹이 번지는 우연성 등 창작 행위의 동적인 측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앵포르멜 (Informel) :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미술 사조로, 정형화된 형태를 거부하고 비정형적인 형태와 재료를 통해 작가의 즉흥적인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동양의 서예에서 영감을 받아 붓질의 속도감, 우연성, 물감의 물질성 등을 강조하며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했다. 이 글에서는 서예의 즉흥성과 행위적 요소를 차용했지만, 서예가 가진 수행적 시간의 축적이나 정신적 깊이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서 미학의 충돌 지점으로 언급된다.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  1940년대와 1950년대 미국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로, 앵포르멜과 유사하게 작가의 감정이나 내면세계를 즉흥적이고 비구상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잭슨 폴록의 ‘드리핑’이나 프란츠 클라인의 대담한 붓질 등이 대표적이며, 동양 서예의 역동적인 붓질과 순간적인 에너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글에서는 서예의 조형적, 행위적 잠재력을 증명하는 동시에, 서예 본연의 정신성을 간과한 외부 차용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서예가, 금석학자이다. 호는 추사(秋史)이며, 그의 독자적인 서체인 ‘추사체’를 창안하여 한국 서예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서예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학문과 인품, 고뇌가 붓끝에 응축된 ‘시간의 결정체’로 평가받으며, 이 글에서는 전통 서예에서 시간성이란 서예가의 삶이 투영된 내재적이고 숙련된 시간의 미학임을 설명하는 예시로 언급된다.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뜨리거나 흘리는 방식인 ‘드리핑(Dripping)’ 기법을 사용하여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강조하며, 동양 서예의 역동적인 붓질과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서양의 앵포르멜 및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서예의 순간적인 붓질과 역동적인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아 ‘분출하는 시간’의 미학을 구현했음을 설명하는 예시로 등장한다.


프란츠 클라인 (Franz Kline, 1910~1962) :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주요 화가 중 한 명으로, 거대하고 대담한 흑백 추상화를 통해 서예적인 붓질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강렬한 붓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양 서예의 ‘일필휘지(一筆揮之)’ 개념과 유사성을 보인다. 이 글에서는 잭슨 폴록과 함께 서예적 요소를 차용하여 ‘분출하는 시간’의 미학을 구현했으나, 서예의 수행적 시간 축적이나 정신적 깊이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사례로 언급된다.


고암 이응노 (顧庵 李應魯, 1904~1989) :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서예를 기반으로 한 추상화를 통해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 현대미술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작가이다. 특히 ‘군상(群像)’ 연작은 서예적 필선을 통해 인간 군중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표현하며, 서예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확장한 ‘내재적 발전’의 모범 사례로 이 글에서 언급된다.


단순한 우연과 의도적 우연 : 이 글에서는 미래 서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단순한 우연 : 서예의 본질적인 이해나 오랜 수련 없이, 단순히 붓의 움직임이나 먹의 번짐 등 예측 불가능한 효과에만 의존하여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이는 서양의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서예의 즉흥성을 차용할 때 정신적 깊이 없이 시각적 효과에만 집중한 경우와 유사하다. 이러한 우연은 미학적 실천 의지가 결여된 채 단발적인 시각적 효과에 그칠 수 있다.


의도적 우연 : 전문 서예가가 오랜 시간 동안 체득된 필법과 먹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즉흥적이고 빠른 붓질 속에서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효과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철저한 훈련을 통해 내재화된 ‘의식적인 무의식’으로, 그 안에 서예의 근본적인 원리와 정신이 새로운 형태로 드러나는 본질적인 대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로 강조된다. 미학적 실천 의지가 담겨 있기에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귀포 ‘3일간의 프로젝트’ : 융합서예가 양상철이 제주 서귀포에서 진행한 서예술 프로젝트로, 노자의 ‘도(道)’ 사상을 바탕으로 서예의 시간성과 행위성을 현대적 공간과 결합하여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제주의 강한 바람과 같은 자연 요소를 활용하여 야외에서 대형 작품 6점을 즉흥적인 붓질과 퍼포먼스로 완성하고 전시했다. 이는 서예의 철학적 깊이를 현장성 속에서 구현하며, 전통 서예의 틀을 넘어선 ‘내재적 발전’의 현대적 사례로 이 글에서 제시된다.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