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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미술관에서 ‘호접몽’을 만나다
  • 강영철 기자
  • 등록 2017-06-02 12: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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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모 개인전 개막··· 철망 겹겹이 만든 ‘경계의 모호함’

장자(莊子)가 어느날 제자를 불러 말했다. “내가 지난 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버렸더니 나는 나비가 아니고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박승모 作 ‘2017.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 484X14X295cm. 박승모의 작품은 겹쳐진 철망들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경계성이 특징이다. 어린이들이 포스코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속을 거닐고 있다.


포스코미술관이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주제로 한 작가 박승모의 대형작 13점을 5월 24일부터 6월 20일까지 선보인다.

 

박승모는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1990년대 중반 인도로 홀연히 떠난 후 5년의 수행을 거치면서 그는 실재(實在)와 환(幻·허상)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입체적 회화’라고 불리는 박승모의 작품은 캔버스 대신 얇은 철망들을 겹쳐 철망 위에 인물 형상이나 풍경의 이미지를 표현하거나 철사를 감는 방법으로 조각물을 제작하는 등 새롭고 독창적인 점이 특징이다. 철망을 사용해 실재나 존재가 없는 빈 껍데기뿐인 형상을 표현함으로써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철이 지닌 예술적 가치를 담아낸다.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상은 모호해지고, 마지막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삶과 죽음, 꿈과 현실, 실재와 환의 경계가 모호해져 무너져버리는 독특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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