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송윤환 선생이 고희를 맞아 전시회를 가졌다. 지난2월, 갤러리경북에서 서울전을 개최하였고, 4월 9일부터는 영주전이 열렸다.
금강 선생은 1987년 12월, 영주 별다방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0년서울역문화관, 2000년 영주시민회관, 2004년 영주대화예식장 2층에서 『추월만정』 출판기념전, 2006년 봉화 춘양목 송이축제전시관, 2007년 소백문화제 특설 전시관, 2009년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 2011년 영주시민회관, 2014년 안동 문화예술의전당에 이어 열번째와 열한 번째 개인전을 연이어 열게 된 것이다.
전시작들을 살펴보면 매, 난, 국, 죽, 송(松), 연(蓮),석류, 감, 해바라기, 산수 등 다양한 화목(畵目)의 작품을 하였다. 전통 문인화를 기반으로 하여 현대적 미감을 부여하였다. 특히 작가 고유의 필법을 바탕으로거칠면서도 우아하고,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상반된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오 채희규 선생은 작품집 서문에서 금강 선생의 이번 전시작품과 예술세계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800호 대작 <청매>는 벽면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크기를 조절한 것에서 작가의 연륜을 엿볼 수 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한 대작은 벽 면적을 맞추기 위해 좁은 공간까지 느낌을 살린 점에서 작가의 예술적 감성을 짐작할 수 있음이다. 농묵으로 나타낸 거칠고 빠른 굵은 선은 소박함과 중후감 있는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조화 있게 표현한 부분은 작가의 인격과 사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들을 서로 잘 조화시켜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운치 있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이런 흥취 속에서는 작가 자신도 격앙되어 화풍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내 마음 속에서우러나오는 한층 고조된 참 그림을 그리며 저절로 시적인 경지에 몰입한다. ‘畵中有詩 詩中有詩’인 것이다.
항상 매화의 생태와 성장 과정을 심도 있게 관찰하고 특성을 연수하며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와 조화를 꾀하여 먹의 농담과 지속 그리고 전체의 조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작품제작에 힘쓰는 모습을 연상해 보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매화는 화법보다 정신으로 그린다고 했다.
척박한 땅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우는 매화 같은 정신과 품격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화 그림에는 작가의 정신과 생애가 내함되어서 높은 상징성을 드러내게 된다.
금강 선생이 매화 작품에 깊이 몰입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매화의 상징성이 작가의 정신과 일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의 예술정신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대작 <풍죽(風竹)>(950×150cm)이다. 세찬 바람에 쏠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강한 기개를 한껏 드러냈다. 죽간(竹幹)이 휘어지는 강도를 달리하여 바람의 강세를 동적으로 표현하였고, 댓잎의 농담(濃淡)을 달리하여 역동성과 입체감을 부여하였다. 바람을 그리지 않았는데도 온몸으로 세찬 바람에 맞부딪치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다. 바람에 맞서는 고결한 정신에 감동이 인다.
굵은 오랜 등걸에 강력한 붉은 색으로 그린 <고매(古梅)>(320×73cm)는 고사(高士)의 정신과 품격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금강선생의 작품에는 높은 격과 웅숭깊은 예술혼과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원숙함이 함께 녹아 있다. <청매>가 빙기옥골(氷肌玉骨)의 청정함과 엄격함이라면, <고매(古梅)>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매화 작품은 금강 선생의 예술의 중심을 이룬다. 왜 그럴까? 문인화는 선비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따라서 선비정신을 담기 위해서는 문인화 화목 가운데 의미와 상징성이 높고, 또한 작가의 성정에 어우러지는 것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하식 선생은 작품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금강 선생의 매화 사랑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매화는 세속을 초월한 기풍으로 많은 문인화가들에 의하여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금강은 다른 문인화가들이 쓰지 않는 독특한 기법으로 순식간의 휘저음 속에 나타나는 그가 그린 지순지결한 매화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도 법열을 느낀다고 한다.
문인화는 작가의 높은 인격(人格)과 사상(思想)으로 시적(詩的)인 분위기 속에 흥취된 상태에서 어떤 화풍(畵風)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맑은 정신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글로 써서 표현한다. 그러나 문인화 속에서는 작가의 수양된 인품이 나타나야 하며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그윽하고 청아한 감정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자기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과 마음은 바로 ‘이것이다’ 하는 것은 신의 찰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금강 송윤환 선생이 본격적인 문인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86년 한국문화예술협회에서 주관하는 종합대상에서 사군자 부문에 동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서당에서 붓을 잡은 선생은 해병대에 지원하여 월남에 파병되었고, 철도청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매화에 애착을 가져 1991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사군자 부문에서 매화를 출품하여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초대작가가 되었다. 또한 행서와 예서도 배워 서화를 겸전하게 된다.
한편 금강 선생은 2014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총연합회에서 주관한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문인화 부문에 세 차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합격하였다. 한국예총에서 특별회원으로 위촉되어 예술문화콘테스트에대한 기획, 제작, 유통, 마케팅, 저작권 등 통합적 관리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금강 선생의 고희전에는 문인화와 서예가 이루는 높은 화격과 서격을 만나는 안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특히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는 선비의 본고장, 유교문화의 중핵을 이루는 영주에서 고희전을 개최하게 된 것은 그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