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서예협회 前 이사장 풍천 노복환(豊川 盧福煥) 선생이 네 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크게 몇 가지 특징이 주목을 끈다. 먼저 13체 천자문 작품이다. 5년에 걸쳐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전와도문(磚瓦陶文), 상방대전(上方大篆), 한간(漢簡),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행초서(行草書), 명조체(明朝體) 등 13서체로 천자문을 썼다. 13체를 다양하게 응용, 표현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13서체 작품들은 서예의 연혁성(沿革性), 시간성, 시원성(始原性) 등의 측면을 담아낸 이번 전시의 씨줄이다. 여기에 고지와 고지의 표현 방식의 날줄이 정교하게 겹쳐진다.
13서체로 불러낸 서예의 시원성
문자는 필연적으로 서사도구를 필요로 한다. 칼, 송곳, 주조, 붓, 연필, 펜, 키보드 등 시대를 달리하면서 그 도구는 변해갔다. 한자는 독특하게도 붓을 통하면서 심미 측면을 갖게 되었다. ‘한자’는 자체가 완성되면서 동시에 서체도 완성되었다. 서리명은 “서예를 논하고 증거를 취할 때 갑골문, 금문을 막론하고 묵서(墨書), 진적(眞迹)은 모두 살아있는 개성 생명이다. 이는 서체 변천의 풍격 표현이다.”라고 하였다. 통용의 서체가 형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서체를 거쳐 갔다. 후대에 이르러 잔적(殘跡)만 남은 옛 서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들도 있다. 문자학 측면과 달리 서예에서는 고 서체의 미학적 측면을 눈여겨본 것이다. 갑골문의 원시성, 전와도문의 상징성, 한간(漢簡)의 독자성 등을 새롭게 주목한 것은 수준 높은 심미감을 오늘날 다시 재조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갑골문(甲骨文), 전와도문(磚瓦陶文), 목간, 죽간, 백서, 금문, 각석 등의 고서체를 섭렵하고, 이를 자신의 개성을 더하여 자기 서풍으로 정착시키는 등 새로운 구성의 예술 표현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서예가들이 전통 서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새로운 심미 관념으로 전통을 관조하고 새로운 개발을 포착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변화를 구하고 심미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풍천 노복환 선생이 선보인 13서체 천자문은 바로 이미 완성된 전, 예, 해, 행, 초 서체만이 아니라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전와도문(傳瓦陶文), 상방대전(上方大篆), 한간(漢簡),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명조체(明朝體)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 서예 미학적 측면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풀어낸 결과이다.
13체 천자문이 각 서체의 기본과 특징에 최대한 밀착하여 쓴 반면 각 서체를 다양하게 변용한 작품들은 색다른 시도의 결과물이다.
웅숭깊은 고지(古紙)의 부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모든 작품에 고지(古紙)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평면, 요철(凹凸), 붙이기, 찢기, 덧붙이기에도 모두 고지를 활용하였다. 고지를 사용하는 장점은 무엇보다 고색의 깊은 맛이다. 이미 긴 시간을 통해 확인한 고지의 장기 보존성, 반복 생산할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유일성, 서획(書劃)에 더해지는 긴 시간의 자연스러움 등은 서예 작품에는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고지의 특성은 직접 붓을 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뻣뻣하고 질겨서 먹이 잘 스미지 않은 고지도 숱하게 많다. 고지의 물성(物性)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쓰기 과정의 또 하나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지에 잘 어울리는 시전지판(詩箋紙板)도 관심 있게 볼 부분이다. 원래 시전지판은 서신을 보내는 서한지(書翰紙)나 시(詩), 부(賦)를 지어 한 수 적는 종이에 장식용 무늬를 찍어 넣기 위해 만든 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꽃, 새, 나무, 나비, 곤충 등 각종 화조(花鳥)나 길상(吉祥)을 뜻하는 동물, 월헌(月軒), 감관(監官), 고인(古人) 등과 같은 글자를 새겨 놓기도 한다. 풍천 선생은 1830년대 만들어진 석류문양 시전지판을 구입하여 2018년부터 줄곧 장식과 작품 표식을 위해 찍어오고 있다.
고지와 서체의 입체적 변용(變容)
이번 작품전에서 유의깊게 봐야 할 점은 서체와 고지의 입체적 변용이다. 요철을 주거나 덧붙이기, 찢어붙이기 등 고지의 입체적 활용은 필연적으로 서예 표현의 다양한 방법 시도이며, 현대 미감의 적극 수용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지점에서 풍천 선생은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서체의 입체화 과정이 ‘서예’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서체에 준한 ‘입체 글자’를 만들었고, 여기에 국한하지 않고 모필로 ‘쓰기’를 더하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쓰기’로서의 서예를 너무 의식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갑골문, 금문 등은 새김, 주조(鑄造) 등의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서(書)의 본질을 갖고 잇지 않은가.
순수 예술로서의 서예는 문자와 도구에 의해 승부가 난다. 어떤 문자, 어떤 도구를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표현방식이 달라진다. 또한 붓, 먹, 종이, 벼루에 의해 모필획의 대소, 강약, 비수(肥瘦), 장단, 활협(闊狹), 강약 등 자태의 다양한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나타난다. 고래로 서예의 수많은 유파를 형성한 것은 서예미의 무궁한 변화 때문이다. 서예미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따라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각기 다른 형태의 시각예술 작품이 생겨난다. 다만 여기에서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필묵의 다채로운 시도이다. 획일과 구획, 통일과 규격의 틀을 벗어나 도(道), 의(意), 신(神) 등을 내함한 예술로서의 서예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와 시도, 유희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유어예(遊於藝)는 시대와 환경 변화 속에서도 서예의 본질을 잃지 않고 서예 풍격, 심미 관념, 서사 기법에서 더 다양한 표현 방식을 더해갈 것이다.
상방대전, 전와도문, 광개토대왕릉비체, 명조체 등의 서체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서체가 있다. 상방대전, 전와도문, 광개토대왕릉비체 등은 천자문으로 드물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상방대전(上方大篆)은 인전(印篆)의 한 형태로 필획을 중첩하고, 쌓아 올려 인면(印面)을 가득 메우는 서체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어보(御寶)와 관인(官印)에는 이른바 ‘구첩전(九疊篆)’ 혹은 ‘첩전(疊篆)’이라고 하는 서체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상방전’ 혹은 ‘상방대전’이라고 한다.
전와도문(磚瓦陶文)은 기와에 새겨진 형상, 문자, 부호 등을 말한다. 서주(西周)부터 동한(東漢) 시기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게 되며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서한(西漢) 시기부터 문자와당(文字瓦當) 사용이 시작되면서 중기에는 전성기를 이루었고, 동한 시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서체는 한대(漢代) 관청에서 통용되어진 예서가 주류이며, 행서, 초서, 전서, 무전(繆篆), 조충서(鳥蟲書) 등 다양하다. 와당문자에 쓰여진 내용은 궁명(宮名), 관제(官制), 지리, 풍속, 성씨(姓氏), 문화, 역사, 사상(思想), 상징적인 부호 등 다양하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인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서체는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서체이다.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급격한 파임이나 파책, 흘림도 없다. 구수하고 질박하여 남성미가 강하게 풍기며 단아하면서도 예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명조체(明朝體)는 중국 명(明)나라 시대의 서체이며, 송(宋)나라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여 송체(宋體)라고도 한다. 송(宋)나라 시대에 목판(木版) 인쇄술이 발명되었는데,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굵으며 가로획의 끝부분이 세모나게 돌출시켜 쓴 독특한 인쇄체(印刷體) 서체이다. 풍천 선생은 조선시대 석농체(石農體)로 유명한 서화가이자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석농(石農) 이종우(李鍾愚, 1801-?) 선생이 쓴 병풍 8폭 작품을 대(對)하고 명조체로 천자문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천 선생의 이번 개인전은 치밀한 준비 과정, 적용에서의 숙고, 서체와 재료의 결합, 서예의 본질적 요소를 견지한 가운데 다채로운 변화와 표현 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 문의 : 삼계, 풍천 노복환(豊川 盧福煥) / Mobile 010-6355-6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