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개념은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개념은 명징한 이해를 통해 본질을 통찰하게 해준다. 개념은 미묘하고 모호한 내용을 일반화하고 평균화하며, 그 의미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일반적으로 규정되어 사용되는 것이 개념이다. 따라서 개념은 정확한 용어 통일을 우선으로 한다. 특정 분야의 용어는 지칭의 개념을 넘어서 본질, 성격, 가치 등을 내함하고 있기에 명확한 용어는 특정 분야 학문의 기초라고 하겠다. 따라서 전문 분야의 용어는 일반 어휘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를 담거나 특화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용어의 표준화는 업무 의사소통의 효율화를 위해 핵심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동일한 대상을 언급할 때 혼선 발생을 막기 위해서이다. 전문용어의 표준화는 수많은 용어 가운데 한 가지로 표준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한메 조현판(曺鉉判) 선생이 『서예용어사전(書藝用語辭典)』(화인디엔피)을 출간하였다. 서예 용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고, 그 용어에는 서예술의 본질 요소가 함축되어 있기에 서예술 이해의 기초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메 선생은 『서예용어사전』 머리말에서 서예의 본질을 이렇게 밝혔다.
“서예는 단순히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다. 문자로 표현하는 건축이면서 음악이고 무용이며 드로잉(drawing)이다. 덧칠할 수 없는 일회성으로 선율의 흐름과 율동감을 종이에 남기는 한편, 자연과 합일되려는 욕구, 청정하게 수양된 인품과 조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최고의 예(禮)이자 도(道)의 예술이다. 또한,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며 풍부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외에도 침착성과 인내심을 길러 인격을 수양하게 하고, 관조의 시간을 통해 여유를 만끽하게 한다.”
이러한 서예의 한길을 걸어오면서 “성현들의 책으로부터 숱한 가르침을 받았고, 그 서적들을 곁에 두고 내 나름의 교본으로 삼고자 했다. 그럴수록 더욱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예용어사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서예용어는 서법(書法), 서론(書論), 미학(美學)을 이해하거나 서화 학습 및 감상과 감정(鑑定)을 하는 데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서예 용어 이해와 인식은 서예에 올바른 접근, 서예 작품를 보는 방법과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넓혀준다.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한 <서예용어사전>은 40여 년의 산고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처음에는 사전을 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으나 서예에 입문한 후 서예용어 자료의 필요성을 느껴 자료를 하나하나 모으고 정리를 하다 보니 꽤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었고, 1980년에는 작은 자료집을 복사하여 동도(同道)들과 공유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서법서론서(書法書論書)가 많이 번역 출간되어 본격적으로 자료를 정리할 수 있어 본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자료가 많아졌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료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용어를 취합하고, 분석, 정리 과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서법(書法)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방대하고 풍부한 서예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고, 용어도 풍부하게 뒤따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예 기법에 관한 용어가 산재(散在)해 있어 되도록 많은 자료를 수렴(收斂)코자 하였으나 필자의 식견이 두루 민첩하지 못하여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더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주어진 능력껏 최선을 다해 궁구(窮究)해 보려 노력하였다. (…) 이 책이 서예용어(書藝用語)의 이해와 참고도서로서의 한 축을 담당하여 창작에 힘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서법서론(書法書論)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한 줄기 마중물이 되고, 글씨를 쓰고 익히는 학습자에게 새로운 방향을 파악하여 구태를 벗어난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계발(啓發)의 불씨가 되는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작은 밑거름이 된다면 이 노력은 큰 보람으로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서예용어사전』은 52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가나순으로 편집되었으며, 115권에 이르는 참고문헌을 밝혀놓았다. 또한 이칭 및 별칭을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서예용어사전』은 서예기법, 서예미학, 서예이해, 서예감상, 서예도구, 서예작품, 서예사 등의 기초가 되는 용어에서부터 역대 서예가, 서예와 연관성 있는 용어 등을 망라하였다. 또한 중요 항목에는 작품 혹은 관련 이미지를 도판으로 수록하여 이해가 용이하도록 도왔다.
최근 들어 서예와 관련하여 수많은 도서가 출간되어 서예 창작과 학습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사전류는 소위 ‘공구서’라고 하여 특정 분야의 공부를 하는 데 수없이 참조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서예용어사전』은 ‘서예 분야의 용어를 정리한 책’의 의미를 넘어서 서예이론, 서예미학, 서예창작으로 향한 길의 관문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한메 조현판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역임하였고, 10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유당미술상, 경남미술인상, 경남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붓글씨공부』. 『쉬운한글서예』. 『명언명구365』, 『조국강산』, 『금언(金言)』, 『현문(賢文)』, 『낙관과 서예문인화』, 『한글서예교본』(정자편/흘림편) 등의 저서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