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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걸 개인전 : 축적된 자연 - 스토리를 없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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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11-10 14:19:24
  • 수정 2025-11-21 13: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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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걸 개인전 : 축적된 자연 - 스토리를 없애가다
  • 전시일자 : 2025. 11. 5(수) - 11. 11(화)
  • 전시장소 : 한국미술관
‘흑백黑白’이 화면에 펼쳐져 만들어낸 무채색의 잔치는 허虛와 실實의 역설의 미학이 스며있다. 두 색의 조화가 일곱 색깔 화려한 무지갯빛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은 두 개의 원리(二元)가 품고 있는 차이difference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흑백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획을 그어 형상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심미 경계가 드러나는 회화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검은 먹물을 흠뻑 묻힌 붓이 화면에 강렬하게 부딪히며 만들어진 필획이 서로 밀고 당기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흑백의 공간을 조율調律한다. 하나의 동작이 그것만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전체에 연결되어 흐르고 있다.
박종걸(朴宗杰, 1962~)은 강렬한 붓 터치에 의한 필획이 서로 밀고 당기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흑백의 공간을 조율調律하고 생각을 재료 안에 담아 느낌을 표현하는 현대미술가이다.





‘흑백黑白’이 화면에 펼쳐져 만들어낸 무채색의 잔치는 허虛와 실實의 역설의 미학이 스며있다. 두 색의 조화가 일곱 색깔 화려한 무지갯빛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은 두 개의 원리(二元)가 품고 있는 차이difference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흑백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획을 그어 형상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심미 경계가 드러나는 회화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검은 먹물을 흠뻑 묻힌 붓이 화면에 강렬하게 부딪히며 만들어진 필획이 서로 밀고 당기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흑백의 공간을 조율調律한다. 하나의 동작이 그것만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전체에 연결되어 흐르고 있다.

박종걸(朴宗杰, 1962~)은 강렬한 붓 터치에 의한 필획이 서로 밀고 당기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흑백의 공간을 조율調律하고 생각을 재료 안에 담아 느낌을 표현하는 현대미술가이다. 그는 “내 그림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그때 내 심정을 그린 것이다. 마치 일기日記를 쓰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작가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자연에서 발견한 영감靈感을 화면에 담는다. 그래서 작가에게 화면은 일기장이다.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 1951~)는 “생각을 재료 안에 담아라.”라고 했다. 작가에게 작품의 소재는 ‘선택選擇’의 문제다. 박종걸은 왜 화선지에 검은 먹과 붓을 선택했을까? 그는 “대학 시절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했다. 내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자신의 생각을 가장 명료明瞭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색色이나 농담濃淡을 사용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한 재료를 찾았고 가깝게 있었던 것이 먹과 한지였다. 내 감정을 화면에 직접 던져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순한 재료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을 고집한다.”라고 했다. 이같이 박종걸 작품의 특징은 대담한 생략과 자유분방한 구도의 움직임, 흑백의 대비를 활용한 공간 구성에 있다.

박종걸 작가는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시간의 축적성을 공간에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가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물에 젖은 나무둥치ㆍ장승ㆍ죽어가는 새ㆍ인물 초상ㆍ북어ㆍ소 등에 관심을 갖고 연작을 했고, 산을 찾게 되었다. 왜 그의 마음에는 산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을까? 그가 산을 표현하지만, 그가 진정 그리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눈으로 보는 단순히 외형적인 아름다운 산이 아니라 산에서 이상향을 찾아가고 있다.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는 『세잔의 산을 찾아서』에서 “폭넓은 외양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의 형태와 이 존재의 형태를 규정하는 관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며, 유일한 것으로서 단지 서로 다른 두 방법을 통해 표현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즉 존재의 형태와 이를 규정하는 관념은 불가분의 관계로 사실상 같은 실체의 다른 면모로 볼 수 있다.

페터 한트케는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 그린 생트빅투아르산에 대한 감상평에서 “실제로 앞에서 바로 보면 생트빅투와르산은 세잔이 그린 산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그림과 달리 너무도 기이하고 독특한 형상 탓인지 세잔이 정말 이 산을 그린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페터 한트케는 세잔이 그린 것은 생트빅투아르산이라는 실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세잔이 평생을 품고 있던 하나의 심상心象, 즉 불멸의 숭고함을 품고 있는 마음속의 영산靈山이며, 세잔이 평생을 찾아 헤맨 영원이라는 이데아였을 것이다. 박종걸이 찾고자 하는 ‘이상향’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우리의 산수화는 자연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스스로가 자연에 부여한 의미에 가치를 두고 있다. 이렇게 수천 년을 이어 안견(安堅, 15세기~?)을 만났고, 정선(鄭敾, 1676~1759)을 만났고, 지금 이 자리 박종걸을 만났다. 박종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자연에 대한 시선은 대상의 관찰과 묘사의 경계 너머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자연의 물상을 인격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산ㆍ바위ㆍ물소리ㆍ우리의 주변 속 일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작가에게 산은 웅장한 모양의 외적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명력ㆍ바람ㆍ비ㆍ태양ㆍ바위가 대기의 바람을 만나 변하는 영속성永續性을 찾아가는데 있다. 어린 시절 예술적 영감靈感이 되었던 물에 젖은 나무둥치, 비에 맞은 기왓장 속에서 만나는 중후함, 그리고 장승ㆍ죽은 새ㆍ인물 초상에서 보여줬던 뿌리가 자연의 생명감으로 그림 속 전반에 흐르고 있다.

정선鄭敾이 보았던 진경眞景을 박종걸의 진경眞景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 보았던 산수를 관념 속에서 그렸던 이상향으로 작가는 변용變容시켜 지금 우리들에게 주변의 산천을 답사하며 그 산수화가 가지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틀에 갇힌 전통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살아 숨 쉬고 변화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작가의 삶과 예술을 통해 여기에 돌려놓고 있다. 새롭게 변화한 전통은 후대에서 생명력을 지닌 전통이 될 것이다. 신화ㆍ전통ㆍ현대는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고 있으며, 전통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지금 박종걸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다.


 - 김찬호(미술평론가)







Part 1 : 영감(靈感), 자연과의 교감(交感)

박종걸 작가에게 영감靈感은 자연에서 오랜 시간 경험하고 축적해온 감정·기억·사유가 응축되어 나타난다. 그는 줄곧 고민했던 현실의 문제,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갈등을 화면에 병치竝置시키고 있으며, 어린 시절 강한 인상을 받은 장승과 월출산에서 느낀 묵직함, 비에 젖은 나무 둥치, 인물 초상에서 보여주는 완고한 주름, 죽은 새 연작, 북어 연작, 소 연작 등 일상에서 선택된 소재로 화면을 구성한다. 그가 받은 일상에서 얻은 영감이 내면의 재구성과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몰입의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박종걸의 작업에서 자연과의 교감은 작품 창작의 출발점이자 끝이다.

박종걸은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바람의 움직임, 숲의 향기, 공기의 기운 등 자연의 총체적인 감각을 온몸으로 체득體得하여 화면에 옮겨내고 있다. 이는 작가의 주체와 자연이라는 객체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교감한다. 흑과 백의 공간이 서로 밀고 당기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바로 자연의 생명력과 작가의 에너지가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교감交感의 흔적이다.



Part 2 : 축적, 구상(具象)과 추상(抽象)

박종걸은 단순한 풍경을 그리는 것을 넘어 동양적 산수화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박종걸은 검은 먹, 거친 필획을 통해 단순히 사물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아우르며 자신만의 미감을 찾아가고 있다.

그는 북한산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강렬하고 거친 필획을 통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 속 대상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하는 동시에 추상적인 붓 터치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구체적인 산의 형상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형상을 이루는 선과 면의 유기적 움직임을 통해 형상이 드러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내 그림은 그때 내 심정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작품이 단순한 외적 형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축적하고 그 느낌을 화면에 즉흥적으로 펼쳐낸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자연의 형상은 작가의 감정이라는 필터filter를 거치면서 점차 추상적 언어로 변모하고 있다.



Part 3 : 경계, 관계 맺기와 관계 넘기

박종걸 작품에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작가와 대상,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 깊은 교감을 통해 자연에서 느끼는 바람, 향기,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총체적인 감각의 과정이다.

작가는 한국화의 정신인 진경眞景을 계승하여 한국의 자연을 화폭에 담지만, 그 표현방식은 결코 전통적인 화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한지에 먹이라는 한정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거칠고 과감한 붓질로 역동성을 담아낸다. 이는 단순한 전통적 계승이 아니라 전통적 재료와 정신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하고 변형시키는 관계 넘기를 끊임없이 펼쳐내고 있으며 익숙함 속에서 신선함과 깊은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Part 4 : 청산별곡, 살어리 살어리랏다

박종걸에게 청산靑山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넘어선 심리적 이상향이다. 그는 정해진 구도 없이 작가가 수없이 산을 다니며 시선이 머물렀던 풍경의 조각들을 모아놓고 있다. 이같이 그의 작품에는 의도적인 것보다 자연에서 느끼는 기운을 화면에 큰 덩어리로 던져놓고 계획된 구도 없이 시선이 머문 축적된 이미지를 골骨ㆍ기氣ㆍ운韻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응상형물凝想形物의 심미 이상을 찾아가고 있다.

박종걸 작가의 작품에는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와 내재된 생명력(氣)을 바탕으로 붓과 먹을 통해 대상의 본질적 아름다움(韻), 흑백黑白, 허실虛實의 역설의 미학이 화면 전체에 흐르고 있다.




박종걸 (Park Jong Geol, 1962~현재)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대동고등학교 졸업 후 경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추사의 서화론에 관한 고찰」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1회 개인전(서울, 서경갤러리, 1997). 제2회 개인전(서울, 관훈갤러리, 2003), 제3회 개인전(서울, 공평아트센터, 2006), 제4회 개인전(서울, 소피아갤러리, 2010)을 열었다. 프로젝트2006 한국화전, 한국화구상회전, 묵전회전, 남한산성전, 한국화의 현대적 해석 이미지 표출전(2009), 현대한국화의 정신전, 한국화의 오늘전, 경기의 사계: 아름다운 산하전(2018), 진경정신전(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전(2019), 서울의 미술계는 안녕한가 피카디리국제미술관 특별기획초대展(2019), ‘산길을 걷다’ 갤러리808(성남아트센터, 2020), 반얀트리BanyanTree전(2021), 박종걸 - 21세기의 진경산수화(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 7). 겸재미술관개관14주년 국제교류특별전(겸재미술관, 2023) 등에 참여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해강에프앤에이(주), 대경모방(주), 진도옥산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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