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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강사현 산수기념전
  • 이용진 기자
  • 등록 2016-10-17 17:35:31
  • 수정 2016-10-17 17: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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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10. 20 ~ 10. 25 인사동 한국미술관

백암 강사현 선생이 산수(傘壽)를 맞이해 기념 서예 전시회를 연다. 평소 누구보다도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백암 선생은 서예를 해야 하는 이유로 ‘서예는 정신문화의 보고’라고 밝혔다.


즉 평생 서예를 하면서 서예가의 소명을 올곧은 정신에 두었던 것이다. 산수전을 앞둔 감회가 어떤지 묻는 질문에 대해 “글씨를 잘 쓰는 것 이전에 서예가 한국 정신문화 발전에 기여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서예를 해왔습니다.

개인의 인기나 조금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서예에 내포된 선비정신을 그대로 받아서 현재의 여러 가지 복잡하고 혼탁한 사회 속에서 사회를 정화하고, 바로 잡는 데 기여하는 것이 서예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백암 선생에게 있어서 서예는 정신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서예는 시각표현예술이라고도 하지만 또한 정신의 예술이기도 하다. 서예는 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문자는 필연적으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표현하는가 못지않게 어떤 내용을 쓰는가, 작품이 어떤 철학과 심미관을 내포하는가도 중요하다. 내용은 단지 표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서예의 핵심 사항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용필(用筆)이다. 또한 결체의 다양한 형식과 장법상 분행포백((分行布白)의 규율 파악 역시 중요하다. 묵법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처럼 서예는 필묵을 다루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기법만으로 서예를 척도할 수 없다. 서예는 필연적으로 서예가의 품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의 철학이 바탕을 이루지 않으면 완정성을 이루기 어렵다. 창작자의 사상은 물론 심미관은 서예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서예를 정신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좀 더 백암 선생의 얘기를 따라가 보자. 백암 선생은 평소 강조해온 서예의 정신성은 효과가 클 때도 있었고, 적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평소 워낙 서예의 정신성을 강조해 선생이 운영하는 서실이나 한국서화작가협회 등은 선생의 서예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래서 맑은 정신, 투명한 운영이 이뤄졌던 것이다.


서예술은 작가마다 다양한 관점과 표현의 다채로움, 지향점의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신이 사라지거나 외적 표현에만 치중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 우려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확산, 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볼거리가 넘친다. 그러다보니 서예를 향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서예는 어떠한 전략을 지녀야 할까 “정부, 사회단체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한자 지식이 부족합니다. 좋은 내용으로 작품을 하여도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한자교육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성현들의 말씀으로 한 작품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실천하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알아서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도 보람있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예가 우리 사회에 좀 더 넓게 그 의미와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고전 읽기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예는 분명 어려운 예술이다. 학습의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는다.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수련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서예의 효과와 가치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만 못내 두려움을 갖거나 거리감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예는 기록, 소통 등의 필요에서 출발하여 심미관을 갖추면서 예술적 완정성을 향해 발전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일상에서부터 의미를 헤아리고, 고전의 핵심을 파악하여 조금씩 실천해 가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백암 선생의 이번 산수기념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백암 선생은 전시회를 위하여 1년 전부터 작품 준비를 하였다. 220여 점을전시한다.


“5체를 골고루썼습니다. 법고창신에 입각하여 작품을 하였지요. 개성을 강조하는 측면 못지않게 서예의 근간인 문자 자체가 의사전달 도구인 만큼 이해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데 주안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전통 서예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표출하려고 했다는 것이 전시작품의 특징이라고할 수 있겠습니다.”




백암 선생은 5체 가운데서도 행서와 초서를 좋아하여 많은 작품을 하였다. “행초서는 변화가 무궁무진합니다. 행서는 서예의 꽃이고, 초서는 한 단계 더 진보한 차원 높은 서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행초서의 묘미가 점점 증대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서예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백암 선생 고유의 필력이 가미되어 20여 년 전에 백암체(白巖體)를 형성하였다. 당시 『4체 천자문(四體 千字文)』과 『명문가구집(名文佳句集)』을 출간하였는데, 이때 천자문은 초보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바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썼다고 했다.


현재까지도 그것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4체 천자문』을 쓰던 당시의 백암체는 세월을 더하면서 세련미가 가미되었다. 선생의 행초서는 더욱 유려해졌다. 초서는 오랜 연습을 해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예로부터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일 때 노숙한 필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암 선생은 나이를 먹고 서력을 더해가면서 그러한 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10년 전 고희전에 이은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전시와 비교해보면 뚜렷한 변모보다는 서예에 대한 느낌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씨는 쓸 때마다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게 서예의 어려운 점이라고 느낍니다. 나이가 들면 성숙미가 있는 반면 줄어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느 부분은 더 향상되는 반면 또 어느 부분은 노력해도 더 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인지하면서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글씨 한 자 한 자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은마음도 있지만, 건전한 문장, 교육적인 문장을 많이 썼기에 그 의미도 새겨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특히 사서삼경에서 많이 작품하였는데, 그 가운데『대학』은 정치를 하거나 사회활동을 하시는분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인서구로(人書俱老)라고 했다. 서예작품도 서예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물리적인 세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연륜이 서예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는 말이다.




선생의 서력을 더듬어보면 한국 현대사에 포개어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 선생 나이 열세 살 때, 고향 충북 제천군 한수면에서 한학과 서예를 시작하였다. 선생님을 모시고 배우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서예를 하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서예를 놓지 않았다.


평소 서화를 좋아하였던 성향이 서예에 더욱 매진하게 하였다. 20년 전 60세가 되는 해까지 사업을 하였다. 사업에 매진하던 당시에는 여건 상 서예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였다.


1972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로 오면서 협회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서실을 열고 후학을 지도한 지도 23년이 되었다.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는 대신 서예에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게 된 것이다.


“서예를 하면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지도에 잘 따라 준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자녀들 역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받았다는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예가 부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팎으로 높다. 그러나 시대 변화로 인하여 전 국민이 모두 서예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서예가 지닌 의미와 가치, 묘미는 점점 널리 알려지는 것 같다.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가 은퇴를 하면서 서예를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사유가 서예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경륜과 학식이 풍부할수록 향유할 게 더 많은게 서예이다.


백암 선생은 늘 선구적인 자세로 서예의 묘미를 직접 보여 주어왔다. 백암 선생은 이번 전시 준비에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틈틈이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건강이 받쳐 주었다.


선생께서 회장을 거쳐 총재로 있는 한국서화작가협회 역시 모범적인 협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도로 임하였기 때문이다. 백암 선생은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초대작가, 한국서예문인화원로총연합회 상임회장, 한국서화작가협회 총재, 한국서도협회 고문, 국제서법연맹한국측 자문위원, 갑자서회 고문, 신맥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백암 해서·행서·예서·초서 천자문』, 『명문가구집(名文佳句集)』, 『청담공 계운공 묘지록(淸潭公 桂雲公 墓誌錄)』 등이 있다.


※ 문의 : 010-8744-5642 (백암 강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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