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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송정현 ‘文人畵 傳統과 現代의 만남’展
  • 이용진 기자
  • 등록 2016-12-12 13:23:32
  • 수정 2016-12-14 10: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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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12. 15 ~ 12. 20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문인화 작품에서 필선(筆線)과 용묵(用墨)은 중요한 요소이다. 필선에는 형상을 나타내기 위한 조형 범주를 넘어서 정신과 기량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붓이 만들어내는 선은 굵고 가늚, 빠르고 느림, 습윤함과 메마름 등의 차이에 의해 수많은 변화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똑같은 사물을 그린다 해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선이 나타난다. 기세가 강한 경우도 있고, 담박하고 맑은 느낌을 전달하는 경우 도 있다. 또한 같은 소재를 다뤄도 사람마다 표현이 다르고, 같은 주제를 다뤄도 다른 형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문인화는 흉중(胸中)의 그림이다. 외형과 신의(神意)을 모두 갖춰야 한다. 흉중의 뜻이 체(體)를 만나지 못하면 졸렬한 표출이 되고, 체는 뛰어나지만 신(神)이 부족하면 경박해진다. 따라서 문인화 작가들은 표현 능력과 함께 문자향을 갖추고, 자신의 예술관을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법(古法)을 익히고, 옛 자취를 더듬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전통은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 위한 터전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문화유전자 - 밈(meme)’에서 전통의 수많은 문화의 축적과 영향은 현재의 문화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문인화는 역대 문인화가 집약한 터전 위에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바탕으로다시 태어난다.


작가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보는 눈이 있고, 모방이 있으며, 치열한 창작의 흔적을 좇아 이미 알고 있다. 그러한 바탕 위에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전통이란 단지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물지 않고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는 대립처럼 보이지만 연결돼 있고, 혼융돼 있다. 과거가 현재이고, 현재가 미래이다. 현재의 치열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미래로 이어질 것이니, 창신은 또 다른 법고이다. 당대의 창신은 후대의 법고가 된다. 그러한 정신을 읽고 따르는 것이 법고와 창신, 전통과 현대이다.


문인화도 시대의 당대 문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작가 외부와의 상관관계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혼란스럽거나 격동의 세기에는 사군자 화목의 정신성이 강조되었다. 이민족이 점령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원대(元代)의 정사초, 조선말기의 민영익 등의 노근란(露根蘭), 원대 오진(吳鎭)의 대나무처럼 사물에 작가 내면을 의탁해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과거에 지녔던 의미와 상징성을 그대로 오늘날 적용할 이유는 없다. 고법 역시 당대에서는 창신의 뜻을 높이 세운 작품세계였다. 그러기에 전통의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지만, 현대에 몸담고 있는 작가는 현대를 그려야 한다. 현대란 작가의 사유인식과 지적 경험과 외부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형성된 현재이다.



시간상의 현재이자 사상의 현재이다. 따라서 현대 한국 문인화는 필연적으로 현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아라 송정현(我摞宋貞賢) 선생이 이번에 여는 문인화 개인전 ‘문인화 전통과 현대의 만남전’은 미래의 문인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전시이다. 기자는 아라 송정현 선생의 2013년 5월 경상남도문 화예술회관에서 있었던 <아라 송정현 작품전> 도록에 수록된 글에서 아라 선생의 작품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전시작은 2013년에 비해 부분적으로 강조, 심화, 확대된 점도 있고, 약화, 축소한 면도 있다. 물론 아라 문인화의 근간과 기풍은 변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 아라 선생의 문인화 세계를 먼저 간략히 정리해보고, 이번 전시작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라 선생의 사군자 작품에는 응축된 기세가 있다. 평소 사군자에 얼마나 깊이 매진하였는가를 느낄 수있다. 매난국죽의 상징성을 유현하게 담아내는 먹의 농담(濃淡)과 비수(肥瘦)에 아라 선생 사군자의 매력이 있다. 먹과 채색을 적절히 살린 매화 작품들은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갈필과 담묵, 채색의 농담을 조화시켜 습(濕), 윤(潤), 갈(渴)이 잘 표현되어 생기를더했다.


묵란(墨蘭) 작품들은 간소하면서도 아취가 높아 심산유곡 은사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대나무 작품들은 빠른 붓놀림에서 마디는 크게 하고 가지는 빼어나게 하여 대나무의 본성을 제대로 드러냈다. 머뭇거림 없이 긋는 댓잎은 예리하고 맑아서 대나무를 그리는 정신이 내포돼 있다.


특히 죽림이 장관을 이룬다. 빽빽하면서도 번잡하지 않고‘密而不繁’, 성글면서도 누추하지 않다[疎而不陋]. 대나무는 이치를 터득하면 한 잎도 간소하게 그리지 않고, 수많은 줄기도 번다하게 그리지 않게 된다 하였다.


팽팽한 긴장감과 정치한 사생은 대나무를 돋보이게 한다. 또한 목련, 두견화, 한련화, 수선화 등 현대미가 잘드러난 채묵 작품들의 성취에도 주목하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백목련은 장엄하고 우아하며, 향기롭고 순결하다.


새한을 견딘 백매(白梅)의 서늘함도 겹쳐 있다. 간결 명료한 구도,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필치, 정중동의 온축된 기세도 아라 선생의 문인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몇 개의 노간과 생지(生枝)만으로도 세파와 고초를 이기고새 생명과 뜻을 피워내는 정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간소하게 그린다고 하여 소략하지 않고 밀밀하게 그린다고 하여 번잡해지지 않는 것이다.


재해석된 소재를 대담한 구도로 표현해냄으로써 현대적 정서와 미감을 풍부하게 지니는 것도 꼽을 수 있겠다. 절제된 필선, 풍부한 여백, 먹빛의 아취 등 전통 문인화의 핵심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다.




이번 전시작에는 전통과 현대 문인화 작품이 균형을 이루었다. 전시 주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진다. 전시작 감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화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라 선생은 사군자, 특히 대나무에 특장을 발휘하여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나무에서 풍기는 문기(文氣)와 문인화 정신은 그동안 아라 선생이 얼마나 대나무에 깊이 매혹되었고, 전심을 다하여 매달려 왔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간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사군자의 특징을 분명하게 이으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찾기 위하여 고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인화 작가들에게 있어서 전통과 현대는 병립하기어려운 요소이지만, 구현해야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 요소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만 있다면 문인화의 의미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인화 정신성을 올바로 확립하면서도 현대미학의 정수를 터득하여 표현해내는 풍요로운 표현기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아라 선생의 이번 전시작에서 현대성의 한 요소로 필자는 색채미, 조형미, 필선미, 그리고 화목(畵目)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색채미는 이번 전시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강렬한 색상이 전통 문인화를 만나면서 이채로운 추상성을 획득하였다. 외형을 버린 것 같으면서도 소재의 특성을 허물지 않고 구현하였다. 여기에 색채 대비로 독특한 미감을 드러냈다.


화목(畵目)에도 주목하였다.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 특히 꽃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에서부터 쉽게 만나기 어려운 꽃까지 다양하게 다루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주위에서 만나기 쉬운 꽃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꽃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성이다. 꽃은 연미하지만 의외로 골기가 있고 깊은 사연을 지닌 경우가 많다. 꽃말을 따져 보지 않더라도 꽃은 일상에서 수많은 의미를 배태하고 있다. 그래서 평범한 꽃일지라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귀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꽃그림은 꽃의 외양을 그리지만, 그 상징 의미를 포획한다. 그래서 꽃을 그리되 꽃의 형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문인화는 형사(形寫)가 아니라 신사(神寫)를 지향한다. 외형이 아니라 정신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흔하고 미약할지라도 속사정을 포착해서 본다면 사물이 달리 보일 것이다.


아라 선생의 작품은 이러한 점을 훌륭하게 제공해준다. 아라 선생의 프리즘을 통하여 나온 두견화는 작가의 진달래꽃, 산하의 진달래꽃, 너의 진달래꽃, 나의 진달래꽃 모두를 보여준다. 능소화, 나팔꽃, 등(藤), 목련, 나리, 수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수많은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감동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라 선생이 그린 꽃은 아라 선생의 것이지만, 나의 꽃이기도 하고, 당신의 꽃이기도 하다. 즉 아라 선생은 ‘전부의 꽃’으로서 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꽃’을 그린 것이다. 나아가 그 꽃에서 각자 자신의 꽃을 취해가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재미 대신 내재미, 형식미 대신 의태미를 추구하는 문인화 작품이지만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 내면에도 상존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라 송정현 선생은 이번 전시작에서 그동안의 작품세계를 심화시켰고, 한 단 계 더 나아가 확산을 이루었다. 특히 한국 문인화의 다채로움 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문인화는 사의라는 상징 가치 추구 속에서도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자유로운 조형을 보여주었다. 특히 작가의 심상세계를 표출하는 만큼 문인화의 강한 추상성은 비주얼 문화가 발달하는 시대 상황에 그 특색을 잘 보여줄 수도 있다.


문인화의 현대성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데서 출발한다. 아라 선생의 이번 전시작들은 문인화 전통의 계승과 창신의 치열함 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이다.


※ 문의 : 010-9611-7381 (아라 송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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