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이상태 작가. 그는 전통 화법을 바탕으로 지금은 자신의 화풍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하려고 한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사물이 아니라 대나무를 그리더라도 바람에 흔들렸던 흔적, 공기, 소리 등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며 창작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그는 특히 다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와 관련 이상태 작가는 “기물이 품고 있는 다도의 정신을 그리고 싶고, 연꽃은 겨울부터 여름에 만개하기까지 햇살, 바람, 비 등 무수히 많은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며 화사함의 극치를 이루는 꽃이 된다”며 “그 숨겨진 과정을 그려 보고 싶었으며, 또 연꽃차에서 발산하는 향기와 에너지를 이미지화 시켜 내면의 세상을 마주하고 싶고, 자연과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 그리고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상태 작가를 본지(한국미술신문)이 만나봤다.
-. 작품의 소재가 다양한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문인화를 배울 때 도제교육이 일반적이었다. 기본 바탕을 배우고 전통을 알아가는 교육으로 좋기는 하지만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조선시대 그림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에서 머문다면 개인적으로 발전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련 과정에서 임서, 임화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자 한다면 옛날의 습성을 잊어 버려야한다. 그래서 나는 재료를 바꾸고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를 했다.
전통 문인화 하시는 분들에게는 거부반응을 보이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하나의 화풍으로 자리 잡힐 것으로 생각한다. 30여년전 국전시절에 문인화에 색을 쓰면 문인화가 아니라는 논쟁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문인화도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사랑받는 분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15년 전부터 차와 다도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며 다완(찻사발)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청아하고 단아한 다완의 모습에 반해 정밀묘사 수준으로 그리다 보니 어느새 작품 속으로 들어 온 것 같다.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정호다완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대단한데 우연히 잡지에서 이것을 보고 황토 빛의 다완에 반해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첫 번째 개인전을 할 때 정호다완에 도라지꽃을 그리고 ‘향수’라는 제목을 붙였다. 고향에 오고 싶어 하는 정호다완의 심정을 그림으로 그려 위안을 삼고자 했다. 현재도 다도생활을 통해 얻어지는 아이디어가 작품 속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 작품 속에 다완(찻사발)이 자주 등장한다.
찻사발이 들어간 그림은 여백이 있고 정갈하다. 차의 정신이 고요하고, 차갑고 내려앉는 느낌을 줘서 번잡하게 그릴 수 없었다. 차는 차분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다도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에 좋고, 집중도가 높아져 작품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에도 좋다. 이러한 조용하고 조신한 정신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묻어나 깊이 있는 작품이 만들어 졌다.
-. 여백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은 작품이 많고. 꽃과 숲으로 둘러싸인 집은 진짜 이런 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간다.
제대로 된 창문도 없는 스레이트 지붕의 허름한 집을 그리기 시작 했다. 나의 고향집이냐는 질문을 많이 하지만 이 집의 이미지는 야외스케치 작업을 위해 김포에 갔다가 만난 시골집이다.
이 집을 보는 순간 느낌이 확 와 닿았다. 저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착하고 소박할까? 부모형제 서로 정겨움을 나누며 우애 있게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저 집이 우리 외가 집이거나 가까운 친척집 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군데 등장 시켰는데 지금은 마음의 고향이 된 것 같다.
-. 관람객과의 소통
흰 화면의 한지위에 묵으로 새긴 점들이 뛰어 노는 것처럼 자유스럽게 그리고 싶다. 그래서 작품 속 꽃그림에 줄기를 그려 넣을 수 없었다. 줄기를 따라 잎과 꽃이 피는 정해진 운명 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꽃잎이 나에게 더 소중했다.
사회적 관습, 규범, 도덕, 법규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을 작품 속 소재를 통해 속박되지 않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작품 속 핀 꽃이지만 너희들이라도 틀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관람객이 숨겨진 의미를 작가와 꼭 동일시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 보여 지는 대로 첫 느낌에 따라 작품을 즐기고 음미하면 된다.